대나무에서 피어난
한 사람의 믿음
박근우 닥터노아 대표
글_ 최행좌 사진 제공_ 황지현, 박근우
일회용컵 대신 텀블러를, 플라스틱 칫솔 대신 대나무 칫솔을 고르는 사람. 박근우 닥터노아 대표는 자신의 선택을 ‘작은 실천’이라 말하지만, 그가 쏟아온 시간과 노력, 그리고 그 속에 담긴 마음은 결코 작지 않다. 그의 걸음을 따라가다 보면 깨닫게 된다. 진심에서 비롯된 행동은 어떤 것도 작은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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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지만 단단한 변화의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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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은 씨앗과 같습니다.” 박근우 대표가 조용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씨앗을 싹 틔우고 스스로 무성하게 피워내는 건 결국 각자의 몫이죠.”
그가 그 씨앗을 품게 된 건 국제구호활동을 하던 시절이었다. 치과의사로 평범하게 살던 그는 2008년, 남부 아시아와 중부 아프리카 빈곤지역에서 구호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엔 제가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한국에 오면 친구들에게 겸손한 척하면서 자랑도 하고요.” 그는 웃으며 고백했다.
“그런데 3~4년이 지나자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우리가 해온 일이 정말 지속가능한 변화를 만들고 있었을까? 그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있었을까? 의심이 들기 시작했죠.”
그 무렵 우연히 접한 것이 ‘그라민 뱅크(Grameen Bank) * ’ 와 여러 소셜 벤처 사례였다. 기업의 방식으로 빈곤 문제를 다루면 더 규모 있고 지속적인 변화가 가능하다는 생각. 그 깨달음은 결국 그를 창업이라는 길로 이끌었다.
“닥터노아를 시작하게 된 건, 그때의 고민과 질문이 축적된 자연스러운 결론이었어요.”- * 그라민 뱅크
- 방글라데시의 경제학자인 무하마드 유누스가 신분증이 없는 불가촉천민들, 문맹자들, 종교적, 문화적 차별의 대상인 여성들 등 가장 빈곤하고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무담보 소액 대출을 하며 시작한 사업으로, 1993년에는 780만 명의 대출자 중 60%가 이 소액 대출금을 기반으로 경제활동을 시작해 빈곤으로부터 탈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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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나무에서 발견한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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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우 대표는 세계 곳곳의 빈곤지역을 직접 보고 느꼈던 경험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많은 국가가 다민족 국가잖아요. 서로 다른 인종과 언어, 종교, 문화가 얽혀 살죠. 그 안에서도 가장 약한 소수민족들은 도시에서 밀려나고, 시골에서도 농토를 갖지 못해 야산으로 또 밀려납니다.”
놀라운 건 그 야산에 대나무가 있다는 사실이다. 따뜻하고 습한 저위도 지역에서 자라는 대나무는 도시가 아닌 시골, 그리고 그 시골에서도 농토가 아닌 산자락에 많다. 그렇게 대나무는 자연스럽게 가장 힘이 약한 사람들이 사는 공간 가까이에 있었다.
“원조만으로는 그들의 삶을 바꾸기 어렵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그 지역에 풍부하지만 활용되지 않는 대나무를 소득 작물로 바꿀 수 있다면 어떨까 고민했습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Prosperity Initiative’(지속가능한 성장을 목표로 하는 사회적 모델) 관련 논문이었다. 베트남 타인호아성 북서쪽은 소수민족이 모여 사는 빈곤지역이자 동시에 최대 대나무 생산지다. 만약 대나무의 부가가치를 높여 원자재 수요를 증가시킨다면 163,000명이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논문을 읽으며 가슴이 쿵쾅거렸습니다. ‘163,000명의 사람들을 빈곤 탈출 시키는 데 내가 기여할 수 있다면, 나는 나의 남은 인생 모두를 갖다 바쳐도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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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을 걸 만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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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그의 머릿속은 온통 대나무로 가득했다. “대나무로 뭘 만들 수 있을까?” 치과의사였던 그는 자연스럽게 결론을 내렸다. “칫솔은 내가 누구보다 잘 만들 수 있겠더라고요.” 박근우 대표는 그때를 떠올리며 웃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조금 성급한 결론이었죠. 하지만 그 선택이 닥터노아의 첫 단추가 됐습니다.”
그리고 그는 인생을 걸었다. 핫 프레싱 기술을 기반으로 플라스틱 칫솔과 동등한 품질, 더 낮은 제조원가의 대나무 칫솔 기술을 개발했다. 핫 프레싱 기술은 자동차 보닛(Bonnet) 같은 것을 만들 때 사용하는 기술인데, 철판을 원하는 틀에 넣고 열과 압력으로 찍어눌러 성형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대나무를 톱과 사포로 다듬는 대신 원하는 모양의 틀에 넣고 열과 압력으로 눌러 성형하는 방식입니다. 자동화도 가능하고, 대나무 속 당이 표면으로 나와 캐러멜라이징되면서 자연 코팅막도 생기죠.”
하지만 여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163,000명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1년에 4억 개의 칫솔을 만들어야 했다. 혼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규모였다. 그래서 그는 방향을 바꿨다.
“우리가 대나무 칫솔을 가장 잘 파는 회사가 되기보다는 모든 플라스틱 칫솔 회사가 대나무 칫솔을 만들게 하는 거였죠.” 그 믿음 하나로 뛰어난 사람들을 모았고, 한국과 미국에서 100억 원이 넘는 투자를 유치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다.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플라스틱 칫솔 회사들은 바뀌지 않았다. 고객이 대나무 칫솔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닥터노아의 첫 번째 미션은 실패로 끝났다. 그럼에도 박근우 대표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언젠가는 다시 길이 열릴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무모했지만 인생을 걸 만한 일이었다고, 지금도 그렇게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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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논문을 읽으며 가슴이 쿵쾅거렸습니다. ‘163,000명의 사람들을 빈곤 탈출 시키는 데 내가 기여할 수 있다면, 나는 나의 남은 인생 모두를 갖다 바쳐도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